빛으로 인생을 그린 사진가 | 초상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쉬의 세계


빛으로 인생을 그린 사진가 | 초상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쉬의 세계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유서프 카쉬(Yousuf Karsh).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고요한 대화를 엿듣는 듯합니다. 이름보다 인물의 눈빛이 먼저 말을 거는 사진. 그게 바로 유서프 카쉬가 만들어낸 초상사진의 힘입니다.




누구보다 사람을 잘 찍은 사진가

1908년, 오스만 제국에서 태어난 유서프 카쉬는 어린 시절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겪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망명했습니다. 그의 사진이 유독 깊고 절절한 이유는, 삶의 고통과 인간 내면의 힘을 누구보다 일찍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차린 그는 정치인, 예술가, 과학자 등 수많은 세계적인 인물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윈스턴 처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어네스트 헤밍웨이, 오드리 헵번까지. 20세기를 정의한 인물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 진심을 드러냈습니다.




사진이 아니라 ‘인물’을 찍다

카쉬는 단순히 잘 나온 인물사진을 찍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찍었습니다. "내가 찍은 것은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인생이다." 그가 남긴 이 말처럼, 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심리적 풍경입니다.

실제로 촬영 전에 피사자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명을 직접 손으로 세팅하며 기다렸습니다. 이런 ‘정성’이 그만의 초상사진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작

1) 윈스턴 처칠의 초상

윈스턴 처칠의 초상 <출처: https://karsh.org/>
윈스턴 처칠의 초상 <출처: https://karsh.org/>

1941년, 유서프 카쉬는 세계 역사에 남을 한 장의 사진을 찍습니다. 바로 윈스턴 처칠의 초상. 담배를 입에 문 채 들어온 처칠의 시가를 그의 입에서 뺏어낸 후 셔터를 눌렀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처칠의 인상을 찌푸린 그 순간을 담은 그 사진은, 전쟁의 리더로서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아이코닉한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초상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초상 <출처: https://karsh.org/>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초상 <출처: https://karsh.org/>

카쉬의 아인슈타인 사진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장난기 많은 천재의 이미지와는 다릅니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고, 얼굴엔 고요한 슬픔이 스며 있습니다. 카쉬는 이 사진을 통해 과학자로서의 무게감과 인간적인 고독을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3)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초상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초상 <출처: https://karsh.org/>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초상 <출처: https://karsh.org/>

1957년, 쿠바의 해변가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헤밍웨이의 거칠고 야성적인 이미지를 완벽히 담아냅니다.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도 깊으며, 카쉬는 “그는 자신이 겪은 삶을 그대로 얼굴에 새기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4) 오드리 햅번의 초상

오드리 햅번의 초상 <출처: https://karsh.org/>
오드리 햅번의 초상 <출처: https://karsh.org/>

헵번의 사진에서는 그 특유의 우아함 뒤에 감춰진 섬세한 감성과 지성이 드러납니다. 얇게 드리운 커튼을 배경으로 한 흑백 사진 속 헵번은 단순한 스타가 아닌, 한 사람의 깊이를 고요히 보여주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유서프 카쉬의 작업 방식: 기다림과 존중의 예술

유서프 카쉬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전에 그 사람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그는 인물의 배경, 성격, 말투, 태도까지 관찰하며 ‘그 사람다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카쉬는 빛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다뤘습니다. 그는 “빛은 나의 붓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조명 세팅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습니다. 특히 극적인 단일 광원을 이용해 인물의 입체감과 분위기를 강조했고, 배경은 흐리게 처리해 인물만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는 주로 8x10 대형 뷰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대부분 흑백 필름을 활용했습니다. 자동화된 기능 없이 모든 것을 수동으로 조정하며, 한 컷에 집중하는 태도는 그의 철학이자 작품의 힘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그의 사진을 보는가?

디지털 시대, AI가 사람 얼굴을 만들고 가짜 이미지가 넘쳐나는 지금, 왜 우리는 아직도 유서프 카쉬의 흑백 사진에 끌릴까요?

그의 사진에는 ‘관찰자의 시선’이 아닌 ‘존중의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인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만이 가진 깊이를 꺼내 보이려는 진심. 그게 지금도 변하지 않는 그의 사진의 매력입니다.




마치며

유서프 카쉬는 단지 유명한 인물을 찍은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인물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낸 작가입니다. 그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은 포즈, 똑같은 구도로 찍어도, 왜 어떤 사진은 사람을 오래 머무르게 하는지.

요즘도 스마트폰 하나로 수천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한 장의 사진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경험은 흔치 않습니다. 유서프 카쉬는 그 귀한 경험을 가능케 했던 사진가입니다.

그의 사진을 보고,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참고 링크